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(문단 편집) == 주제의식 == [[미야자키 하야오]]가 애니메이션 극장판에서의 비판을 얼마나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, [[코믹스]]판의 이후 전개는 애니메이션과 상당히 다른 방향이 되어, 기존에 지적된 비판점들을 넘어선, 실로 걸작이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는 작품을 완성하기에 이른다. 단순히 세계를 인간과 자연으로 나눌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하여, 나우시카를 종교적 구원자로 그린 애니메이션에서의 영웅 신화적 구도를 해체해 버리는 데다가 아예 부해의 설정마저 변화하였기 때문에 거의 별개의 작품으로 보아야 할 정도이다.[* 다만 극장판이 개봉하기 전인 1983년에 출간된 1, 2권에서도 이미 설정과 스토리는 상당히 달랐다. 오무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인공 생명체라든가,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[[부우 왕]]이나 [[도르크 제후연합]]이 등장한다. 즉,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영화와는 다른 전개로 이야기를 구상해놓은 듯하다.] 결말부에서 작가 미야자키 하야오는 주인공 나우시카의 입을 빌어 생명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. 나우시카는 "생명은 빛이다!"라며 긍정적인 면만을 극대화한 생명을 받아들일 것을 호소하는 묘소의 주인에 대해, 생명이란 그 이면에 음울함 역시도 품고 있으므로, "아니, 생명은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빛이다!"라고 외친다. 묘소의 주인이 지금의 인류는 이미 오염된 세상에 적응했기에 앞으로 찾아올 정화된 세상에서는 제대로 살아남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며, 멸망한 옛 첨단 문명의 잔재인 과학 기술로 폭력성을 덜어내고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도록 설계한 신인류를 제시하지만, 나우시카는 생명은 찬양해 마땅한 빛이라고 호소하는 묘소의 주인을 예의 대사를 당당하게 외치며, 그 주위를 두른 어둠을 제거한 빛은, 즉 부정적인 면을 제거한 생명은 결코 생명이라고 부를 수 없음을 관철하며 부정한다. 애니메이션 버전이 통속적인 수준에서 인간 VS 자연의 문제를 논하는 데 그치고 있다면 코믹스 버전은 그런 차원을 넘어서 [[유토피아]]의 존재와 의의, [[허무주의]]를 조장하는 종교에 대한 비판, 인간의 [[자유의지]]와 본성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. 따라서 아예 관심이 없다면 모르지만 애니메이션을 본 적이 있다면 코믹스를 통해 그 진정한 종착점을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. [[정성일]] 같은 경우엔 '[[미야자키 하야오]]는 코믹스 나우시카와 애니매이션 나우시카를 별개의 작품으로 생각한 것 같으며, [[애니메이션]]판을 단순히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기 쉽게 만들어진 버전이라고 생각하긴 힘들다. [[히로시마 원자폭탄]] 투하 이후의 일본 영화에서는 타인과 자신, 생존의 문제를 다루는 전통이 생겼는데, 미야자키 하야오는 《바람계곡의 나우시카》를 통해서 파멸을 앞두고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'고 평했다.[[http://seojae.com/web/etc/ttl010216.htm|#]] 결과적으로 코믹스판 나우시카의 최종적인 주제는 '''생명 그 자체의 소중함과 위대함.''' 이렇게 극장판에서 차원이 달라진 수준으로 코믹스가 깊은 주제를 다루다 보니, 일본에선 "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애니메이션으로 봤으면 아이, 코믹스로 보면 어른"이라는 말까지 나온다.[* 그런데 실제로도 그런 것이, 코믹스에서는 [[모노노케 히메]]가 약과로 보일 정도로 잔인한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. 자세한 내용은 특징 문단 참고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